posted by 치운 2013. 10. 25. 12:02

4. 고구려 영토 지도 어떻게 이해할까.

고구려 영토의 변천과 지도상에 영토를 표시하는 데 있어 몇 개의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지도는 고구려의 모습을 2차원의 도면에 표현해 내는 것이다. 단순히 고구려의 면적만이 아니라, 고구려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것이다. 하지만 영토가 넓다고 해서 국가가 위대하다거나, 자랑스럽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캐나다가 넓은 땅을 가졌지만, 1/50에 불과한 잉글랜드 보다 그 땅이 지니는 역사적 가치는 적다. 면적이 넓다고 해서 제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흔히 민족주의 사학에서 고구려를 넓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몽골 초원의 1억 평 보다는 경주 일대의 백만 평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고구려에게 있어서 요하에서 한강에 이르는 비옥한 농경지는 국가의 핵심지로 당시까지 개간이 안 된 넓은 삼강평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한 가치를 지닌다.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별 특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맹목적으로 크게만 지도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민족의 영광만을 내세우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고구려를 보는 것이 못 마땅하다고 해서 고구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고구려의 내지만을 영토로 지도에 표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고구려가 제국이었던 만큼, 제국의 중심지대와 주변지대가 있다. 제국의 주변지대는 흔히 세력권, 영향권, 변방 등으로 말하기도 하며, 현대 중국식 표현을 빌리면 변강(邊疆)에 해당한다.

현재 중국의 역사 지도를 그릴 때에 중원의 정통왕조의 영역에 변강의 나라들을 포함시키는 것처럼, 고구려도 내지와 그의 세력이 미친 범주에 대해서 함께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고구려는 제국을 운영한 나라답게,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여 새로운 고구려 문명을 창출해냈다. 멀리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까지 왕래하고, 세계제국인 수와 당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맞서 싸워 이긴 고구려인의 힘은 그들 스스로가 가진 제국의 경영자라는 자부심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고구려의 주변지대를 영토에 그리지 않는다면, 고구려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가 없으며, 고구려인의 활동 무대도 잘못 오해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지도는 학생들에게 중국이 현재의 영토만큼 넓은 영토를 고대로부터 갖고 있었다는 인식을 주입시켜준다. 그것은 그들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가 옛날부터 존재해 왔다는 만들어진 논리를 증빙하기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지도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지도 표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고대 국가들에게는 오늘날처럼 명확히 측량을 해서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영토라고 하는 국경선이 없었다. 막연하게 이 지역까지 영토이고, 어디를 지나면 타국이란 개념이 전부였다. 즉 국가와 국가 사이에 완충지대가 매우 넓었다. 고구려에게 요서 지역, 대흥안령 일대가 대표적인 완충지대였다. 완충지대는 선이 아닌 면으로 지도에 표현되어야 한다. 특히 완충지대를 중국의 것이라고 단정 짓는 기존의 지도는 분명 고쳐야 한다.

고구려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명확한 구분, 고구려의 주변지대를 어떻게 영토 지도에 표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개인의 저서에서는 다양하게 표시된다고 하더라도, 교과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이 없었던 것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교과서에서부터 고구려의 천하, 또는 고구려의 중심부와 주변부 등의 제목 하에 고구려의 지배력이 미친 지역을 지도로 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 개인의 저서에서는 표현하기가 다소 힘들지만, 사회과부도나 국사교과서에는 반드시 지도를 지형도를 배경으로 그리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어느 지역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 예를 들어 왜 삼국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고 노력했는지 -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를 통해서 역사를 읽는 것은 단지 어떤 나라가 얼마나 큰 영토를 가졌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가 어떤 지역을 언제 어떻게 차지함으로써 이후 어떤 역사적 변천을 겪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어떠한 자연환경에 놓여있는 국가이기에 어떠한 역사적 행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단서가 지도에 포함되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고구려 영토에 대한 지도는 얼마나 넓은가에 관심이 모아져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고구려의 역사 전개의 이해를 돕는 지도, 즉 그들이 어떠한 자연조건을 가진 지역에서 활동했으므로, 어떠한 역사상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지도가 그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