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치운 2013. 10. 30. 11:58

한국어의 계통을 찾아서

손주일


1. 머리말


이 글에 우리는 한국어의 계통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추적해왔는가, 그리고 이 논의의 현재적 상황은 어떠한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어는 언제부터 있었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한국어의 형성사는 한국어의 기원적 성격을 밝히는 일과 그 역사적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언어는 어디서 기원했는가? 우리는 대부분 이 문제를 언어학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기원은 언어학적으로 구명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학으로는 한국어의 系統을 추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국어의 선사의 모습은 의문에 쌓여 있다. 즉, 한국어는 그 계통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언어이다.

최근까지도 한국어는 유형적인 면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있고 동일 어원을 가진 낱말이 발견되는 점에서, 알타이 계통설이 통속화되어 있고, 또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동계설이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아직 해명되어야 할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가설 수준의 학설일 뿐이다.


2. 언어의 계통적 분류와 한국어


언어의 계통은 親族關係에 의해서 결정된다. 어떤 고립된 언어의 계통을 밝힌다는 것은, 그것과 어떤 다른 언어(또는 언어군) 사이에 친족관계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들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하나의 언어에서 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언어에서 두 개 이상의 언어로 갈라지는 언어들은 서로 친족관계에 있다고 하며, 그 옛날의 한 언어를 共通祖語(Parent Language)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의 전체를 이룰 때 語族이 된다.

지구상에는 3000~6000개의 언어가 있다고 하는데, 이들을 계통적으로 분류한 인구어족을 위시한 적지 않은 어족이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그 계통이 밝혀지지 않은 고립된 언어들이 산재하여 언어의 완전한 계통적 분류는 난망한 실정이다. 아시아에서 그 계통적 분류가 어려운 언어로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꼽는다.


3. 우랄-알타어족과 한국어


필란드 학자 카스트렌(Castren)에 의하여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방대한 영역의 언어들을 포괄하는 우랄-알타이어족이 구성된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었다. 이 시기의 이론적 특징은 공통특징론인데, 이른바 교착성, 모음조화, 두음법칙, 말음법칙, 性?數의 결여 등이 곧 이 어족의 특징으로 거론되었다.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진술은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로니(Rosny 1864), 달레(Dallet 1874), 로스(Ross 1878) 등은 한국어와 타르타르어(Tartar, 대체로 우랄-알타이어에 해당) 사이의 유형적 유사성을 지적했는데, 다같이 구체적인 언어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 피상적 관찰에 그친 것이었다. 한편 아스톤(Aston 1879)은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양 언어를 비교 연구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20 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어의 계통론이 추구하는 비교 대상은 주로 우랄-알타이어가 되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白鳥庫吉(1914~1916)은 595개의 이르는 한국어의 낱말을 알타이제어와 비교했는데, 특히 만주-퉁구스어, 몽골어, 튀르크어 등 알타이제어와 비교한 것이었다. 이 어휘 비교에서는 음운대응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의미와 형태가 유사한 낱말만이 비교되었으나 이 작업은 구체적인 비교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뿔리바노프(Polivanov 1927)는 최초로 음운과 형태면에 걸쳐 언급하면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찾으려했다. 그는 알타이제어의 *l2, *r2와 한국어 r의 대응을 다루었는데, 이러한 음운대응과 그 대응 예로 든 낱말의 비교는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그리고, 小倉進平(1934)은 한국어와 우랄-알타이어 그리고 일본어와의 관계를 논하면서 한?일 두 언어의 관계가 완전한 同系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좀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 알타이어족과 한국어


한국어의 계통은 알타이어족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편 람스테트(G.J.Ramstedt)는 필랜드의 몽골어, 알타이어 학자이다. 그는 토이기?몽골어(?만주어)-퉁구스어 간에 친근관계가 있다는 알타이어족설을 내놓았고, 나아가 구체적인 언어 사실을 들어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앞서의 공통특징론을 뛰어 넘어 외견상의 유형적 유사성이나 비슷한 낱말을 나열하지 않고, 일정한 음운대응을 관찰하고 또 문법 형태소를 분석하여 그 일치하는 것을 찾는 진정한 비교언어학적 방법을 구사했다. 람스테트(1952,1957,1966)의 '알타이어학 개설(I~III)'은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의 '한국어 어원 연구(1949)'도 이 방면의 기념비적 논문이라 할만 하다. 그런데, 람스테트(1950)는 "한국어를 용이하게 알타이어군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라고 언급하여 모순된 말을 한 것과, "한국어는 앞으로 더 연구를 요하는 불가사의한 언어이다.(람스테트의 편지 ; 포페 1950:572)"라고 말한 것을 참조하면 그가 행한 한국어의 계통 연구는 어떤 한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람스테트에 이어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관계를 한층 깊이 있게 연구하려 한 것은 포페(N.Poppe)이다. 포페(1960)의 '알타이제어 비교 문법'은 음운론에 한정된 것이지만 한국어의 낱말 82개가 비교 대상인데, 이 작업은 람스테트에서보다 훨씬 정밀화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의 관계가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한국어에 적어도 알타이어 기층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Poppe 1960:6)."라고 신중하게 말했다. 그는 '한국어의 위치는 그다지 확실하지 않다'고 전제한 다음 한국어의 계통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1) 한국어는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가 있을 수 있다. (2) 원시한국어는 알타이 통일체가 존재하기 전에 분열했을지 모른다.[즉 분열 연대가 대단히 이르다.] (3) 한국어에는 알타이어 기층밖에는 없다. 즉 한국어는 기원적으로 비알타이어인데 이것이 기층언어인 고대 알타이어를 흡수했던가 혹은 기층언어인 알타이어 위에 얹혔을지도 모른다. 이 진술은 한국어의 계통 추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대변해 준다.

최근 한국어의 계통에 큰 관심을 보여주는 외국인 학자가 있다. 밀러(Miller 1980:146)는 한국어는 일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언어는 알타이어족 중 퉁구스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이어서 한국어의 고지명에서 추출되는 낱말을 알타이제어 또는 고대 일본어와 비교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를 모두 고대 한국어의 변종으로 취급한다. 한편, 레빈(Lewin 1981)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언어를 모두 고대한국어archaic Korean로 보고 있다.


5. 국내학자들의 한국어 계통 연구


우리의 한국어 계통 연구는 해방 후에 알타이제어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는데, 람스테트와 포페의 영향이 컸다. 그 첫 연구는 분뇨어(糞尿語)를 중심으로 한일 어휘 비교를 꾀한 이숭녕(1956)부터라 할 수 있다. 그후, 이기문(1967)은 구체적인 언어 사실을 들어 한국어와 알타이어와의 관계를 개관했고, 이기문(1963), 송민(1965,1973,1974), 김사엽(1974), 이남덕(1977) 등은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비교 연구에 깊이를 더했다. 김방한(1978)은 음운론과 형태론의 몇 가지 면에서 한국어와 알타이제어를 비교한 바 있으며, 김방한(1981)에서는 한국어의 저층에 잠정적으로 '원시한반도어'라고 부르는 어떤 미지의 언어가 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알타이제어 중에서 만주어와 비교한 것은 이기문(1958), 박은용(1974,1975), 성백인(1978), 김동소(1981) 등이 있으며, 몽고어와의 비교에는 김형수(1981)가 있다.

한편 김방한(1976,1977)에서는 한국어에 길리야크어의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여 한국어에 있는 비알타이어적 문제를 제기했다.


6. 알타이제어와 한국어와의 관계


람스테트(1952)는 알타이어족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알게 되어 최초로 한국어까지 아우른 알타이어족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표1], [표2]와 같이 한국어의 위치를 다른 세 어군과 동등한 것으로 보았다.

 

     몽고인        北              퉁구스인

 

          西                                東  

 

           토이기인     南              한국인

 

                               [표1]

                                                           퉁구스인
                                    몽고인                   한국인
                                                      토이기인
                                                                [표2]


그는 한국어는 한편으로는 퉁구스와 한편으로는 토이기어와 친근성을 보여주고, 토이기어는 한국어와 몽고어와 친근성을 보여주며, 몽고어는 토이기어와 퉁구스어와 친근성을 보여주며, 퉁구스어는 몽고어와 한국어와 친근성을 보여준다고 하여 이와 같은 가설을 세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포페(1960)는,

"한국어의 언어재는 퉁구스제어와 가장 가깝다. (중략) 그런데 한국어는 상고중국어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것은 한국어가 매우 일찍 분리했음을 말해주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원시한국어가 알타이 공통조어에서 맨먼저 분리했을 것이다. 그 뒤에는 토이기?몽고?퉁구스 단일어 시대가 꽤 오래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 오늘의 토이기어의 선조가 분리했을 것이며, 몽고?퉁구스 단일어가 얼마 동안 존속하다가 드디어 몽고어와 퉁구스어도 분리했을 것이다."

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표3]으로 나타냈다.

 


                                 알타이공통어

                      |                                    |

           토이기?몽고?퉁구스 공통어         원시한국어

            |                         |                     |

        先토이기어       몽고?퉁구스 공통어           |

       |         |                 |           |             |

원시토이기어   츄바슈조어    원시몽고어  원시퉁구스어      |

     |              |             |            |             |

  토이기어      츄바슈어      몽고제어    퉁구스제어    한국어

 

   [표3]


한국어의 위치와 분화 시기의 추정에 대한 포페의 논거는 비록 취약(상고중국어로부터의 차용)한 측면이 있으나 한국어가 맨먼저 떨어져 나왔다고 하는 그의 가설은 어느 정도 취신할 만하다.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전통적 3 어군과의 관계는 그들 3 어군들끼리의 관계보다는 그 친근성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페의 견해만으로는 한국어의 위치가 확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알타이 공통조어 단계에 있어서의 상태와 그 분화 과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을 것이며, 중세국어가 신라어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라면 한국어의 위치는 좀더 미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7.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 한국어의 계통 연구에 대한 현황과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와의 친근성을 전제로 하고 또 알타이어와의 비교 연구에 의해서 한국어의 계통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해 왔다. 둘째, 한국어에서 알타이제어와 공통된 요소를 발견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과연 한국어와 알타이제어의 친근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것인지 의문이다. 셋째, 대부분의 연구가 한국어와 알타이제어 간에 일치의 추구에 주력해 왔으나, 앞으로의 연구는 비알타이어적 요소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대안 중의 하나는 원시한반도어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넷째, 한국어에서 알타이제어의 요소가 발견되면서도 음운대응의 규칙성을 설정하기 어렵고 또 일치하는 어휘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해서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이 방면의 연구 방법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알타이제어에서의 한국어의 위치와 그 분화 시기의 추정은 일단 한국어가 알타이 공통조어에서 가장 이른 단계에서 분화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좀더 세밀한 뒷받침이 필요하다. 여섯째, 대부분의 서구학자들은 비교에 있어서 한국어에 관한 한 지나치게 현대어에 의존하는 결함을 지녔다. 이제는 우리 학자들의 고문헌과 방언 연구에 의한 성과를 통한 비교 연구를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