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치운 2013. 11. 28. 11:32
Ⅰ.오리엔트 수학 : 실용적인 산술과 측량

▶ 오리엔트 수학의 특징

▶ 바빌로니아 수학

▶ 이집트 수학

▶ 수의 표기법

 

◎이집트의 상형 문자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

 

◎마야 수체계

 

◎로마 수체계

 

◎인도-아라비아 수체계

◆오리엔트 수학의 특징

아프리카의 나일 강변(이집트 문명), 서아시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메소포타미아 문명), 남 중앙아시아의 인더스 강 유역(인더스 문명), 동아시아의 황하 유역(중국 문명)에 기원전 2000년까지에는 고대 4대문명이라고 부르는 상당히 발달된 고대 국가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고대 국가의 주요 경제 활동은 농업과 목축으로 이 강들의 홍수로 부터 농토를 관리하는일과 거기서 나오는 생산물을 분배하고 조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초기의 수학은 주로 고대 오리엔트(그리스의 동쪽)의 지역에서 농업이나, 토목, 건축과 같은 일에 필요한 실용적인 과학으로서 발생했다.
즉, 초기 수학의 특징은 실용적인 산술과 측량에 있었다. 이로부터 대수와 기하학의 시초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오리엔트 수학에서는 오늘날 '증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이렇게 하여라.' 그러면 구하는 넓이 등이 구해진다고 할 뿐, 왜 그렇게 하면 그것이 구해진다는 이유를 밝힌 것은 없는데, 이것은 Ⅱ에서 논하는 고대 그리스 수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수학에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이와 같은 고대 문명에서 수학은 필수적인 요소의 하나였는데 오늘날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메소타미아)의 것뿐이다.
결국 오리엔트 수학은 토지측량, 토목공사 등 현실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만 쓰여진
'생활수학'이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발전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영구적인 구운 점토판을 사용했고 건조한 기후 지역의 이집트인들은 돌과 나일강변의 갈대로 만든 파피루스를 사용했다. 그러나 초기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은 나무 껍질이나 대나무와 같은 썩기 쉬운 재료에 기록을 남겨 놓아 오늘날까지 확실하게 전해진 것이 별로 없다.

◆바빌로니아 수학

초기 바빌로니아인들은 바늘을 가지고 젖은 점토판에 뾰족한 이등변 삼각형을 새겨 넣어 쐐기문자를 만든 다음 기록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 그 판을 화덕 속에서 구워서 남겼다.
이것이 19C에 와서 기원전 1600년경의 함무라비 왕조의 점토판이 발굴되고 쐐기문자 원문을 해독함에 따라 바빌로니아인들이 상업과 농업에 있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계산술을 사용했고 60진법의 수체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의 기하학은 거의 실제 측량과 관계된 것으로 특징은 대수적 성질에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2차방정식의 해법과 연립 2원2차방정식의 해법도 알고 있었으며 3,4차 방정식의 간단한 것도 다룰 정도로 대수가 싹트고 있었다. 오늘날 원주를 360등분 하는 것도 틀림없이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의 업적이다.

 

◆이집트 수학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하류 지방에 있는 파피루스라는 갈대와 비슷한 풀을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 기원전 1650년 경의 사원의 서기인 아메스가 쓴 '아메스의 파피루스'(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린드 파피루스라고도 함)에는 농토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 분수 계산의 방법과 같은 당시의 수학이 기록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원의 면적을 직경의 8/9의 제곱과 같다고 했고 직원기둥의 부피와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였으며 거대한 피라미드의 부피도 구하였지만 바빌로니아인들에 비하여 1차방정식 밖에 다루지 못하였다.

 

◆수의 표기법

아마 초기의 셈은 일대일 대응 원리를 이용한 간단한 조각 물건에 의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 접기, 조각돌이나 막대기 모으기, 자국 내기, 새김눈 내기, 매듭 묶기를 해서 셈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 수를 세는 방법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수를 표기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나라마다 독특한 표기법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 기원전3400년경 이전에 사용되었으며 10진법에 기초하여

 

임의의 수는 모두 위의 기호를 요구된 수만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표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3015=1(10⁴)+3(10³)+1(10)+5     =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 : 기원전 2000년경 ∼기원전 200년에 사용되었으며 뺄셈 기호를 이용하여 표기를 간단히 하기도 했다.

예를들면, 38=40-2=
기원전 3000년과 기원전 2000년 사이의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은 위치의 원리를 이용한 60진법을 개발했었다.
예를들면, 524,551=2(60³)+25(60²)+42(60)+31=
이방법은 그 위치에 따라 1, 60, 60², ···을 나타냄으로써 오늘날 사용하는 위치적 기수법의 시초가 된 셈이지만 기원전 300년 후까지도 0에 대한 기호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마야 수체계 :20진법에 기초하며 0에 대한 기호가 있으며 이 기호의 변형이 지금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점과 대시에 의해 매우 간단히 표현되고 있다.
큰 수는 마야의 방식대로 세로로 쓰여졌다. 예를 들면

오늘날 초등산수에서 사용되는 긴 곱셈이나 나눗셈과 같은 계산 규칙은 15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개발되었다. 이렇게 계산 규칙이 느리게 발전된 이유는 충분한 종이 재료가 없었기 때문인데(중국인들의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12C이후에 유럽에 소개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수판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덧셈, 뺄셈 방법에서 넘겨주거나 빌려 오는 개념이 바로 수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마 수체계

10진법 또는 5진법을 사용하고 뺄셈의 원리(작은 단위의 기호를 보다 큰 단위의 기호 앞에 놓아 두 단위의 차를 나타냄)가 이용되었다.

1

5

10

50

10²

500

10³

I

V

X

L

C

D

M


예를 들면
1944=MDCCCCXXXXIIII
1994=MCMXLIV

이러한 형식은 큰 수를 나타내기가 불편하며 계산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계산은 수판으로 하고 숫자는 그 결과를 기록하는 데 사용하였다.

◎인도-아라비아 수체계 :1, 2, 3, 4, 5, 6, 7, 8, 9.0
인도-아라비아 수체계는 인도인들이 그것을 발명하고 아라비아인들이 서유럽으로 전파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위치값이나 0이 사용된 최초의 기록은 페르시아 수학자 알-화리즈미(al-Khowarizmi)가 825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책에서 완전한 인도 수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 새로운 수체계가 언제 유럽에 전해졌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13세기 쯤에는 이미 전유럽으로 전파되어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 후 「수판론자와 산법론자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다가 수판론자들은 자취를 감추고 18세기가 되면 서유럽에서 수판은 사라진다.

 

0이라는 뜻의 영어 'zero'는 '공허한'혹은 '텅빈'이라는 의미의 인도어 sunya가 아라비아어 sifr의 라틴어 형태인 zephirum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이 0이라는 기호로 말미암아 마침내 오늘날의 10진법이 확립되고 사칙연산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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