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치운 2013. 12. 11. 11:06

쿠르드족 [ -族 Kurd ] 
 사회과학 > 민속학 > 민족학 
 
 
 
요약
이란어 서북계에 속하는 민족. 터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북이라크에 사는 쿠르만지와 이란·이라크에 걸쳐 있는 쿠르디의 두 방언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음성·형태면에서는 옛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쿠르드말은 고유문자가 없고, 문헌은 지역에 따라 아라비아·아르메니아·라틴·키릴 문자로 표기한다.
 
 
 
본문
이란어 서북계에 속하는 민족. 터키·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북이라크에 사는 쿠르만지와 이란·이라크에 걸쳐 있는 쿠르디의 두 방언 그룹으로 크게 나뉜다. 음성·형태면에서는 옛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쿠르드말은 고유문자가 없고, 문헌은 지역에 따라 아라비아(페르시아)·아르메니아·라틴·키릴 문자로 표기한다. 인구는 약 20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터키에는 터키 인구의 19%, 이란 전체 인구 중 10%, 이라크 전체 인구 중 23%가 쿠르드족이며, 그 외 시리아, 소련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BC 2000년쯤 수메르 비문(碑文)에는 이미 반호수 동방민족으로서 카르다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있다. BC 1000년쯤에는 쿠르티에로 알려졌으며, BC 5세기의 그리스 군인·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카르다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현재 터키에서는 퀴르트, 아랍권에서는 쿠르드, 이란에서는 코르드라 한다. 거주민의 대부분은 산악지대에서 양·염소 등의 목축이나 과수·보리·쌀 재배에 종사한다. 지연적(地緣的) 성격이 강한 부족(아시라)을 이루어 족장 아가는 의식·재판의 집행, 구성원으로부터의 벌금, 아하티라는 세금 징수, 외래자 접대 등을 하고, 그 지위는 장남이 상속한다. 쿠르드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이슬람기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조로아스터교나 유대교를 믿었다. 이슬람화 이후 그들의 대부분은 수니파였으며, 신비주의교단(타리카)에서는 카디리야의 영향을 받았다. 시아파는 1/3쯤 된다. 처음에는 아랍계·페르시아계 왕조 아래의 부족군이었으나, 10세기에는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는 마르완왕조(983∼1085), 아제르바이잔의 라와드왕조(10세기초∼1071)를 창립하였다. 17세기에는 오스만왕조와 사파비왕조 사이에 국경이 정해지면서 쿠르드지역이 분단되고, 부족장에 의한 봉건 영주적 지배 아래 작은 국가들이 떼지어 들어서 19세기까지 그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부족제는 19세기말 터키에서 305종의 부족이름이 확인된 것으로 알 수 있다. 16세기 이후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통치를 받던 쿠르드족들은 제 1 차세계대전 직후 패전국인 오스만제국 분할을 위해 1920년 맺어진 세브르조약에서 독립국가 창설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이 조약은 터키의 반발로 국제적으로 비준되지 못했고 이를 대체한 23년 로잔조약에서는 쿠르드국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터키공화국과 팔레비(파흘라비)왕조의 이란이 성립되고 이 두 나라와 소련령 카프카스·아르메니아·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시리아 등으로 분할된 상태가 굳어지자 각지에서 독립운동과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란에서는 제 2 차세계대전 뒤 마하바드에 쿠르디스탄인민공화국이 세워졌으나 1년도 못되어 무너졌다. 1979년 이란 혁명 때 여러 정당이 결성되었는데, 그중 이란쿠르드민주당(KDPI)을 중심으로 쿠르디스탄에서의 민족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이라크에서는 1919년 영국 통치 아래 쿠르디스탄독립선언이 발표되었으나 곧 탄압받았다. 공화제 발족 뒤 헌법으로 아랍·쿠르드의 평등이 인정되어 쿠르드어 출판물도 공인되었지만, 88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은 악명 높은 화학무기까지 동원해 쿠르드족 마을의 80%를 파괴하는 초토화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1923년 근대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아타튀르크(케말파샤)가 쿠르드 언어와 문화 말살정책을 펴면서 쿠르드족을 박해했다. 이때부터 터키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구심점 없이 지지부진하던 쿠르드독립운동은 84년 쿠르드노동자당(PKK)과 반군 지도자 A. 오잘란이 등장하면서 무장유혈투쟁의 길을 걷게 되었다. 터키 군사정권은 쿠르드어의 비공식사용마저 금지시켰다가 91년 해제했다. 99년 오잘란이 체포되었지만 쿠르드족의 항의시위는 계속되었고, 이란·이라크로 거점을 이동하여 반군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2003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도 쿠르드족과, 인근 종족 및 나라 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카의 역사  (0) 2013.12.11
최강의 용병 구르카  (0) 2013.12.11
유목민족 설명  (0) 2013.12.04
우르 (Ur)  (0) 2013.12.04
“선비-퉁구스” 역사-문화 공동체  (0) 2013.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