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치운 2013. 12. 4. 15:32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도시국가였다. 지금은 텔 엘 무카이야르이다. 구약성서에는 아브라함의 고지(故地), ‘칼데아의 우르’라고 한다. 1854년 당시 쐐기문자의 해독자로 유명한 영국의 롤린슨(H.Rawlinson)의 부탁을 받은 주이라크 영국 영사인   J.E. 테일러가 발견하였으며, 1922년부터 영국의 C.L. 울리가 중심이 되어 본격적으로 발굴하였다. 우바이드기(期)에서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유적 ·유물이 밝혀졌으며, 최고(最古) 주민은 BC 4000년경까지 소급된다. 우바이드기 후반에 2.4 m 두께의 홍수층(洪水層)이 있는데, 울리는 이것이 수메르지방 일대를 덮치고 뒤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반영된 대홍수라고 생각하였다.

  번영기는 초기 왕조시대(BC 2800∼BC 2400?)이며, 수메르 왕명표(王名表)는 홍수 뒤 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키시 ·우루크왕조에 이어 우르 제1왕조를 든다. 왕명표에 있는 앞의 둘은 가공 연대인 데 대해, 우르 제1왕조는 4왕이 177년간 통치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 왕명표에 있는 메스 안니 파다의 이름을 새긴 각명(刻銘)이 발견되었으므로 왕조의 존재는 확실해졌다. 우르는 일찍부터 원격지 무역을 하였고 크게 번영하여, 수메르 지방의 도시국가 중에서 지도적 지위에 있었다.

【왕묘의 발굴】 울리는 ‘왕가(王家)의 묘지’로 일컬어진 지구에서 약 2천기(基)를 발굴하였으며, 왕묘(王墓)는 그 중 16기이다. 모두 지하에 석조로 만들어졌으며, 호화로운 부장품과 다수의 순사자(殉死者)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왕 슈브 아드 묘에는 정교한 금 ·은세공과 보석을 여기저기 박은 머리장식품 ·빗 ·귀걸이 ·가슴장식품 등을 여왕의 시체에 장식하였고, 28명의 성장(盛裝)한 시녀를 매장하였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하프, 7현금(七弦琴), 2마리 당나귀가 끄는 썰매, 황금그릇 등 다수가 출토되었다.

  또 메스 카람 두그의 묘에서 출토된 황금단검과 투구, 다른 묘에서 발견된 스탠더드(標幟) 등 모두가 수메르문명의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왕묘’는 이전에 이미 파헤쳐졌으나, 죽음의 수갱(竪坑)에서는 6마리 소가 끄는 2대의 수레와 병사 ·시녀 ·마부 ·악사 등 63명의 시체가, 또 죽음의 대수갱에서는 74명의 순사체가 발견되었다. 울리는 이것들을 BC 3200년 이전의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현재는 초기 왕조시대 후반으로 여기며, 왕묘 성격에 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우르 제3왕조】 BC 2370년경 수메르 지방은 셈계(系) 아카드인(人) 사르곤 1세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그러나 181년 동안의 사르곤왕조가 끝나자 수메르는 부흥하였으며, 이윽고 우르 제3왕조(BC 2113∼BC 2006?) 밑에서 번영을 되찾았다. 초대 우르남무는 시벽(市壁)을 재건하고 궁전과 월신(月神) 난나르를 위하여 웅대한 지구라트(聖塔)를 조영하였다. 역대 왕들은 주위에 신전을 건립하여 넓은 성역(聖域)을 만들었다. 제2대 슐기는 법전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함무라비법전》의 원형이 되었다. 또한 다수의 점토서판(粘土書板)이 발견되어 당시의 경제생활과 교역활동을 전해준다. 그러나 이 왕조도 5대 107년 간 계속되다가,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두산대백과사전>참고